[연재] 프롤로그 4. 소비자와 만드는 사람, 서로의 입장에서 가구 바라보기

소비자와 디자이너/목수는 무엇을 서로 알아야 할까? 21년 차 가구디자이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구를 선택/주문하는 방법, 가져야 할 기술과 태도를 살펴봅니다.
주관적인 내용 잔뜩 들어가 있으니 참고만 해주세요. ^^

좋은 가구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같은 가구를 바라보면서도 소비자와 만드는 사람이 보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아마 공통점은 '좋은 디자인' 하나 일 듯합니다.
그 외에 
대부분의 소비자는 가격을 보고 판단하지만, 만드는 사람은 그 가격 안에 들어 있는 나무, 작업시간(작업 난이도), 장비, 마감, 배송과 설치까지 생각합니다.

결국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가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21년 동안 가구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좋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수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그 차이를 설명하는 능력도 가구를 만드는 기술의 일부입니다.
 

1. 소비자는 가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가구를 구입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디자인입니다.
하지만 디자인만 보고 선택하면 실제 사용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식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확인할 부분        생각해 볼 내용
크기                   공간에 적당한가?
높이                   의자와 함께 사용하기 편한가?
재료                   어떤 수종과 등급인가?
구조                   사용 중 흔들리지 않는가?
마감                   관리하기 쉬운가?
수리                   문제가 생겼을 때 수리가 가능한가?

모든 항목에서 최고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관리하기 쉬운 가구가 중요할 수 있고, 혼자 사용하는 책상이라면 디자인과 작업 편의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가구를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비싼 가구'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가구'입니다.
 

2. 맞춤가구를 주문할 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맞춤가구를 제작할 때 소비자가 가장 먼저 전달해야 할 것은 정확한 디자인보다 자신의 생활입니다.

알려주면 좋은 내용

  • 누가 사용하는가?
  • 어디에 놓을 것인가?
  •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가?
  •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
  • 주변에는 어떤 가구가 있는가? *인테리어 사진 유용
  • 원하는 분위기는 무엇인가?
  •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특히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격보다는 오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얇고 가벼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정보는 제작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3.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주세요"가 어려운 이유


   "이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주세요." 맞춤가구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주문 가구 작업도 하는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단순히 주문을 받기 위한 목적에만 둔다면(지적 재산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요구한 디자인 그대로 만들어주면 속 편할 일이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21년의 삶을 저버리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지적재산권을 떠나 자존심의 문제로 카피를 해달라는 요청에는 한 번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서 받아들이는 손님은 주문하실 것이고, 그렇지 않고 좋은 디자인을 단순히 싸게 만들어 쓰겠다는 생각만 가진 소비자라면 다른 공방을 찾아가겠지요.
대부분 공방까지 찾아오신 손님들은 '그만큼 좋은 디자인으로 제안서를 보내겠습니다' 라고 답하면 거의 모든 손님들이 거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손님들이 진짜 주문의사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21년 차 디자이너/목수도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면 작업 시간 외에 별도로 디자인하고 제안서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시간이 소비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소비자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상담을 하시면서 디자이너/목수가 별로라고 생각되어 주문할 의사가 별로 없으시다면 솔직하게 말씀하셨으면 합니다'
저를 포함한 같은 일을 하는 선후배 작가들이 조금이라도 더 디자인과 제작에 힘을 쏟을 수 있게 하는 길이거든요.

오래전, 나무의 특성상 옹이나 색 다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었음에도 완성되어 배송 후 그 문제로 전체를 환불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미운 며느리 뒤꿈치만 봐도 밉다고 했잖아요. 괜히 정성스레 만든 가구가 계속해서 미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서재에 들어갈 대형 책장과 책상이었습니다. 제작기간이 한 달 이상 소요되는 일인데, 결국 그 가구들은 제가 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ㅡㅡ.

디자인에 반영할 요구사항을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솔직하게 상담하면 서로 만족도 높은 결과물을 얻어질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4. 왜 같은 원목가구인데 가격이 다를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슷하게 생긴 가구의 가격 차이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구 가격은 단순히 나무 가격 = 가구 가격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가구 가격 = 재료비 + 부자재 + 제작비 + 마감비 + 작업실·장비 비용 + 운송·설치 + 디자인·개발 비용 + 마진 등이 포함된 가격입니다. 같은 월넛이라도 목재의 등급과 건조 상태, 크기와 무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또한 같은 디자인이라도 제작방법에 따라 작업시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겉모앙은 같은데 보이지 않는 속 부분의 결합방법이 크게 다를 수 있음)

따라서 가격을 비교할 때는
"왜 비싸지?"보다는 "무엇이 다른 가격을 만들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5. 디자이너/목수 입장에서는 무엇이 보일까?

소비자가 완성된 가구를 본다면 목수는 그 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봅니다.

월넛 테이블 하나를 만든다고 해도 목수는 다음을 생각합니다.
  • 어떤 목재를 선택할 것인가?
  • 목재 상태는 적절한가?
  • 나뭇결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 목재가 움직일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 상판과 다리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 사용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 어떤 방식으로 샌딩하고 마감할 것인가?
  • 운송과 설치가 가능한가?
완성된 가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 차이들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좋은 가구의 품질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6. 디자이너/목수는 왜 소비자의 요구를 모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소비자의 요구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작자는 그 요구가 실제로 가능한지도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판이나 다리를 지나치게 얇게 만들거나, 구조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없애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제작자가 단순히 "원하시는 대로 만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서비스는 아닙니다.

좋은 제작자는 문제가 예상될 경우 이유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만들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대신 이런 방법으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구조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제작방법 난이도에 따른 제안가격이 부담이라면 상담을 통해 충분히 같은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쉬운 제작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 아니기에 가능한 제작자는 최고의 방법을 선택하고자 했음입니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충분한 가격 조정이 가능한 것이 주문가구입니다.
저는 이것 역시 디자이너/목수의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7. 좋은 디자이너/목수는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설명하는 사람이다

목공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가구 제작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사람은 손재주 좋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기술력이 뛰어난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자신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특히 원목가구는 공산품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결합방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같은 수종이라도 나뭇결과 색상, 옹이 등이 다르고, 목재는 주변 환경의 습도 변화에 반응합니다.

따라서 제작자는 소비자에게 다음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 어떤 목재를 사용하는가
  • 왜 이 구조를 선택했는가
  • 가격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제작기간은 왜 필요한가
  • 원목의 자연스러운 변화는 무엇인가
  • 어떤 관리가 필요한가
  •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까지 수리할 수 있는가
좋은 제작자는 잘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잘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8. 디자이너/목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

가구 제작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제작기술(공구/기계 사용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래와 같은 다양한 영역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영역           필요한 능력
목공기술    절단·가공·결합·샌딩
재료           수종·건조·목재의 특성
디자인        비례·형태·기능성
구조           하중·결합·목재의 움직임
마감           오일·바니시 등
안전           공구·기계 및 작업장 안전
소통           고객 요구를 이해하고 설명
견적           재료비·작업시간 계산
기타           배송·설치·A/S

가구는 잘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위의 모든 영역을 함께 다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1인 공방의 디자이너/목수는 잠잘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9. 소비자도 '좋은 고객'이 될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목수에게 맞춰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수록 더 좋은 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맞춤가구 상담 전 체크사항(디자이너/목수에게 전달할 사항)

  • 가구를 놓을 공간(인테리어 사진, 크기 등)
  • 사용하는 사람
  • 주된 사용 목적
  • 원하는 디자인 예(사진 등)
  • 사진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
  • 원하는 목재와 색상
  • 가장 중요한 조건
  • 예상 예산
  • 원하는 납기
목수는 소비자의 생활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비자가 자신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설명할수록 제작자는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10. 결국 소비자와 제작자의 목적은 같다

소비자는 가격을 생각하고, 제작자는 제작비를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완성된 가구를 보고, 제작자는 제작과정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가구를 만들고, 오랫동안 만족하며 사용하는 것.

문제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의 생활과 필요한 기능을 이야기하고, 제작자는 재료와 구조와 제작방법을 설명해야 합니다.

좋은 가구는 소비자와 제작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 소비자와 제작자를 위한 1분 체크

소비자
① 어디에 놓을 것인가?
② 누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③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④ 어떤 디자인인가?
⑤ 가격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⑥ 관리와 수리는 어떻게 하는가?
 
제작자
① 디자인을 구현할 목공 기술을 갖추었는가?
②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가?
③ 사용하는 사람을 생각하는가?
④ 견적·납기·배송·A/S까지 생각하는가?


아래는 2010년 제작했던 서재 가구 제안서 일부 예입니다.





제작 중간에는 형태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전체적인 모양을 사진으로 보내드려서 실물 가구를 체크하실 수 있도록 해드립니다.

제작을 모두 마치고 배송일이 정해지면 가구제작 인증을 겸하는 주문가구안내서와 가구 관리요령이 적힌 인쇄물을 배송하면서 같이 전해드립니다. 모든 가구는 제가 직접 배송가서 조립방법이나 사용방법, 주의사항을 전반적으로 설명해 드립니다. 아래는 그때 드리는 주문가구안내서 일부 예입니다.




🌳 21년 차 가구디자이너의 한마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나무만 보아서는 안 되고,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은 완성된 가구만 보아서도 안 됩니다.


나무를 이해하고,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가구를 사용할 사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좋은 가구가 만들어집니다.


지금까지 좋은 가구의 의미 → 가격과 가치 → 원목가구를 오래 사용하는 방법 → 소비자와 제작자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부터 실제 가구를 만드는 과정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STUDIO YG _구)박연규 우드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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