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4 가구의 비례와 균형을 보는 법

1.4 가구의 비례와 균형을 보는 법


1.3절에서 가구를 볼 때 용도 → 비례와 형태 → 구조의 순서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중 비례와 균형을 실제 가구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가구의 비례는 단순히 각 부재의 치수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각 부분의 크기와 위치가 전체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입니다.

1. 비례는 크기가 아니라 관계다

가구에서 비례를 볼 때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전체 크기와 각 부재의 크기
  • 가로·세로·높이의 관계
  • 상판과 다리의 관계
  • 부재의 두께와 길이
  • 부재 사이의 간격
  • 전체 형태와 부분 형태의 관계
예를 들어 같은 크기의 테이블이라도 상판이 두껍고 다리가 굵으면 묵직한 느낌을 주고, 상판이 얇고 다리가 가늘면 가볍고 날렵한 느낌을 줍니다.

어느 쪽이 좋은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가구의 용도와 공간, 그리고 디자이너가 의도한 이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비례를 볼 때는
“이 부재가 몇 mm인가?” 보다
“전체에서 이 부재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 좋습니다.

2. 실제 가구로 비례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스 베그너의 CH24 Wishbone Chair를 보겠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CH24는 전체 높이가 약 76cm, 좌판 높이가 약 45cm, 폭 55cm, 깊이 51cm 정도입니다.
숫자만 보면 특별한 치수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의자를 실제로 보면 상당히 가볍고 열린 느낌을 줍니다.
(한스 베그너의 위 디자인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디자인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디자인이기에 이 디자인을 예로 든 것뿐입니다.^^. 
인스타그램 등에 보면 예쁘고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 참 많아요. 일본의 회사나 공방에서 만든 간결하고 심플한 의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특히 서양인들은 덩치가 한국인과 달라서 커요. 특히 엉덩이가 커서 좌판의 크기가 생각보다 너무 넓어요. 수입의자를 써보신 분들은 아실거에요. 매장에서 앉으면 괜찮은 높이였는데 집에 들여서 앉으니 불편하시죠? 이유는 매장에서 신발을 신고 앉아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45cm입니다. 여자분들이 앉으면 그래서 발꿈치가 바닥에 안 닿으니 의자를 깊숙이 못 앉습니다. 
이 높이는 한국인에겐 좀 높아요. 좀 낮춰서 43cm 정도로 내려야 하고, 가족들 키가 좀 작은 편이라면 40cm까지 내려도 문제없어요. 오히려 높은 거 보다는 낮은 게 나아요. 
그리고, 주의하실 것이, 의자를 낮추면 테이블도 낮춰야 합니다.
수입가구 테이블들 대부분은 75cm 높이 입니다. 이것도 72~73cm로 낮추고, 필요하면(테이블 상판 밑 가로대가 없는 타입이라면) 70cm로 내려도 문제없습니다.
*팔걸이 있는 의자는 팔걸이 높이를 체크하시고 의자가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는지 확인하시고, 애매하게 딱 끼는 높이면 손가락 끼임 사고 잦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면,
  • 등받이와 상부 프레임은 비워진 하나의 큰 형태를 만들고
  • 앞뒤 다리는 비교적 가늘며
  • 좌판은 목재 대신 데니쉬 코드를 이용해서 무게를 줄였고
  • 등받이와 다리의 곡선이 서로 연결되면서
  •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무게를 줄이고 있습니다.

즉, 각 부재 하나하나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부재들의 관계가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고 안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이렇게 실제 가구를 볼 때는 “예쁜 의자다”에서 멈추지 않고,

  • 왜 가벼워 보이는가?
  • 어떤 부재가 시각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는가?
  • 비어 있는 공간은 전체 형태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3. 전체 → 부분 → 다시 전체

가구의 비례를 볼 때 제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체 → 부분 → 다시 전체

먼저 가구를 하나의 덩어리로 봅니다.
  • 무거워 보이는가? 가벼워 보이는가?
  • 안정적인가? 날렵한가?
  • 단단해 보이는가?
그다음 부분을 봅니다.

  • 상판의 두께
  • 다리의 굵기
  • 다리의 위치
  • 프레임의 크기
  • 선반의 위치
  • 부재 사이의 간격

그리고 다시 전체를 봅니다.

부분적으로는 좋아 보였던 요소가 전체에서는 지나치게 크거나 작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비례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4. 황금비는 하나의 참고 기준이다

비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황금비(Golden Ratio)입니다.
황금비는 일반적으로 1 : 1.618의 비율을 말합니다.

가구 디자인에서도 황금비를 하나의 비례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 가구 디자인에 황금비를 적용한 사례가 있으며, 테이블의 상판이나 가구의 전체 형태뿐 아니라 각 부재의 관계를 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령, 테이블 상판 깊이를 100cm로 할 경우 길이는 160cm로(정확히는 161.8) 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황금비에 맞췄다고 해서 좋은 가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구는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식탁의 높이나 의자의 좌판 높이는 황금비보다 사람의 신체와 사용 목적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저는 황금비를 정답이라기보다 비례를 생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먼저 용도와 필요한 치수를 정하고 전체 형태를 만든 뒤, 황금비와 같은 비례 체계를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황금비와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디자인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황금비율을 적용하면 약간 뚱뚱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로 테이블 상판 디자인 할 경우 조금 더 길게 합니다.^^)
상: 황금비
하: 제가 주로 쓰는 비례 1:1.8


5. 균형은 좌우 대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균형이라고 하면 좌우가 똑같은 대칭을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구에서 균형은 반드시 대칭일 필요가 없습니다.

비대칭인 가구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인 무게가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한쪽에 두꺼운 부재나 넓은 면이 집중되어 있다면 실제 무게와 관계없이 그쪽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늘고 가벼운 부재와 비어 있는 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비대칭이어도 전체적으로 균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구를 볼 때는
“좌우가 같은가?” 보다
“어느 한쪽으로 시선과 무게가 지나치게 쏠리지 않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6. 두꺼우면 두꺼운 이유가 있어야 한다

가구를 보다 보면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가구인데 부재가 지나치게 가늘거나
작은 가구인데 부재가 지나치게 두껍거나
상판은 두꺼운데 다리는 지나치게 가늘거나
전체 크기에 비해 작은 부재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거나
하면 서로의 관계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이런 대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의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차이에 디자인적인 이유가 있느냐입니다.

제가 가구를 디자인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두꺼우면 두꺼운 이유가 있어야 하고, 얇으면 얇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힘 있는 디자인을 위해 두껍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가벼운 느낌을 위해 얇게 만들었다면 그것 역시 디자인의 의도입니다.

좋은 비례는 정해진 숫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의도가 형태와 비례를 통해 일관되게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디자인한 대형 테이블인데요.
길이 260cm, 깊이 110cm, 높이 75cm 입니다.
힘 있는 디자인을 하고자 대형 테이블에 맞게 상판과 다리 두께를 7cm로 두껍게 처리하고, 시각적으로 적당한 긴장감을 주도록 다리 위치를 중심으로 당겼습니다.
물론, 테이블 중앙에 4명이 나란히 앉았을 때 테이블 다리가 사용에 불편하지 않도록 감안을 했습니다.



7. 가구를 볼 때 이렇게 살펴보자

실제 가구를 만났을 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보면 좋습니다.

① 전체를 본다

  • 전체적으로 무거운가, 가벼운가?
  • 안정적인가, 날렵한가?
  • 가로·세로·높이의 관계는 어떤가?

② 주요 부재를 본다
  • 상판이나 등받이는 전체 크기에 비해 적절한가?
  • 다리는 너무 굵거나 가늘지 않은가?
  • 부재 사이의 간격은 적절한가?

③ 위치를 본다
  • 다리는 왜 이 위치에 있는가?
  • 선반이나 프레임은 왜 이 높이에 있는가?
  • 비어 있는 공간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④ 시각적인 무게를 본다
  • 가장 무거워 보이는 부분은 어디인가?
  • 가장 가벼워 보이는 부분은 어디인가?
  • 시선이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는가?  *디자인 목적상 일부러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시각적 무게를 쏠리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⑤ 다시 전체를 본다

부분을 따로 봤을 때와 전체로 봤을 때 느낌이 일관적인지 확인합니다.

비례와 균형을 보는 눈

비례와 균형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습니다.
황금비와 같은 비례 체계도 있고, 인체 치수와 사용 목적에 따른 기준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좋은 가구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의 공식이 아닙니다.

용도에 맞는 크기
전체와 부분의 관계
시각적인 무게
비례와 균형
그리고 디자인의 의도

이 모든 것이 함께 작용
합니다.

그래서 가구를 볼 때 단순히
“예쁜가?” 라고 묻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왜 이렇게 보이는가?” 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CH24를 보면서 왜 가볍고 편안해 보이는지, 왜 안정적으로 보이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가구라면,
“이 비례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가구가 단순한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여러 요소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진 하나의 디자인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가구의 비례와 균형을 보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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